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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언론보도

  • 보복을 넘어 회복으로 [2009-12-12]
  • 등록일  :  2011.06.23 조회수  :  3,808 첨부파일  : 
  • 보복을 넘어 회복으로

    2009-12-12 / 대전일보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은 중감금 시설인 청송 제2교도소 독거실에 감금되었다. 거기서 그는 TV를 볼 수도 없고 교도관 이외에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12년 후 일흔이 다 되어 석방되더라도 다시 7년 동안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리 큰 고통을 준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나영이와 그 가족의 고통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1월22일, 13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구치소 안에서 자살 했다. 그렇지만 가사, 그를 사형에 처했더라도 대중의 화풀이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피해자가 살아나거나 유족의 상처가 회복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과 고조선의 팔조금법에서 보듯이, 고대에는 범죄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을 가하거나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왕권이 크게 강화된 중세이후, 국가는 개인적 보복을 금지하고, 피해자에게 지급될 배상금을 벌금이라는 형식으로 가로챘다.

    현대국가는 범죄를 방지하고 법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경찰ㆍ검찰ㆍ법원ㆍ교도소 등 방대한 규모의 형사사법기관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사건은 끊임 없이 발생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신적ㆍ육체적ㆍ금전적으로 고통받는 동안, 흉악 범죄자들은 ‘국립호텔’에서 공짜로 먹고 잔다. 가해자에게 벌금형이 선고되더라도 그 돈은 모두 국고에 귀속된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와 같은 모순을 간파하고, 범죄 피해의 회복에 기여할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에도 범죄피해자 구조제도와 배상명령제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피해자 구조금은 그 지급기준이 까다롭고 금액도 너무 적어서 단지 명목상의 제도에 불과하다. 배상명령의 활용범위도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가해자에게 경제력이 없는 때에는 아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북미와 유럽의 민간조직들이 고안해 낸 것이 범죄자와 피해자의 직ㆍ간접 대화를 통하여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이 대화의 과정에서 범죄자는 자신의 범행이 피해자와 지역사회에 미친 악영향을 깨닫고 사죄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도록 요구받는다. 피해자는 자신의 감정과 고통을 토로하고 가해자에게 사죄 또는 배상을 요구할 기회를 부여받음으로써 범죄의 악몽에서 벗어나 본래의 생활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한다.

    국내에서도 이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의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및 일부 피해자 단체들이 실험적으로 범죄자와 피해자의 대화를 알선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1970년대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착시킨 제도를 단기간에 도입하려면, 매우 신중하고도 치밀한 준비과정이 요구된다. 제도시행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화해알선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이 제도의 본래 취지는 당사자의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범죄사건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회복하는데 있다. 범죄자 처벌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전통적 형사재판의 결함을 보충하여 피해자의 입장도 함께 배려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국비예산이 아니라 공사단체 또는 개인의 기부금에 의하여 운영된다면, 형사사법의 공정성은 무너지고 형사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것이다.

    다른 한편, 비전문가의 경솔한 의욕은 본래의 범죄사건보다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2002년7월31일 남편의 폭력을 피해 천안의 한 여성쉼터에 몸을 의탁했던 주부가, 화해하겠다며 찾아온 남편에 의하여, 센터 관계자의 면전에서 난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이 화해알선 전문가 양성을 제도 시행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오랜 준비기간을 거쳤던 이유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김용세 대전대 법학부 교수